[시승기]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


누구에게나 드림카가 존재한다. 페라리, 람보르기니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들 브랜드는 다른 세상 속 얘기라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더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메르세데스-AMG, BMW M, 아우디 스포츠 등을 꼽는 소비자들도 많다.

그러나 이 브랜드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때문에 당장 BMW M3를 구입하는건 부담이지만 현실적인(?) 3시리즈 구입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경우도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고성능 라인업을 운영하는 이유다. 슈퍼카 브랜드처럼 소비자들에게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 이 이미지가 하위 모델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며, 실제 판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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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진 재규어랜드로버도 이러한 고성능 브랜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SVO(Special Vehicle Operations).

AMG나 M이 고성능을 추구한다면 SVO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갖는다. SVO라는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고성능 모델에는 SVR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또, 럭셔리함을 강조한 모델에는 SVA, 극한의 오프로드 성능을 위한 SVX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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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G나 M과 비교하면 신생 브랜드이기에 아무래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SVO의 현 상황. 또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한방이 필요하다.

지난 2014년, 랜드로버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기록을 작성했다. 뉘르부르크링 서킷 양산 SUV 부문에서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당시 레인지로버 스포트 SVR이 작성한 뉘르부르크링 기록은 8분 14초다. 고성능 SUV의 대명사로 통하던 BMW X6 M의 기록이 8분 24초였으니 비교가 된다. 스포츠카로 분류되는 포르쉐 카이맨(987) S 도 8분 17초를 기록한 바 있다.



끝이 아니다. 510마력의 슈퍼차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미국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Pikes Peak International Hill Climb, PPIC) 경기에서 12분 36초 61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양산 SUV 신기록도 작성했다. PPIC는 해발 2860m에서 시작해 4300m까지 총 156개의 코너를 지나 정상에 도달하는 경기다.



점잖은 SUV로 인식됐던 랜드로버가 이렇게 잘 달릴 줄 누가 알았을까? 물론 위에서 언급한 기록은 지금 타 브랜드에 의해 경신됐다. 그럼에도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SUV 중 하나로 꼽힌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강력한 달리기 성능을 갖춘 모델로 자리매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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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을 만났다. SUV계의 슈퍼카를 만나는 만큼 오랜만에 설렘도 가득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은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한 2세대 모델이다. 기본적인 디자인은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같다. 하지만 검은색 그릴과 거대한 공기흡입구, 4개의 머플러와 디퓨저 등으로 고성능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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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부 거대한 휠이 눈에 띈다. 휠은 기본 21인치인데 옵션으로 22인치를 택할 수도 있다. 레인지로버 스포츠 자체도 덩치가 큰데 휠이 작아 보이지 않는다. 휠 안쪽으로 대형 브레이크 시스템이 눈에 띄는데, 전륜에 6 피스톤 캘리퍼를 썼다. 면적도 넓어 보이고 강력하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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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모델의 외관에는 카본 파이버 패키지가 적용됐다. 공기 배출구를 가진 엔진 후드와 사이드미러, 사이드 가니쉬 등 곳곳에 카본을 썼다. 덕분에 외관에서 풍겨오는 위압감도 커졌다. 그 위압감 속에는 사고 나면 알아서 하라는 무언의 압박도 포함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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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분위기는 스포츠카를 연상시킨다. 운전석과 조수석 시트도 헤드레스트 일체형 버킷 시트가 기본이다. 뒷좌석을 버킷 시트 형상으로 마무리한 것도 눈에 띈다. SVR의 이미지를 많이 알리고 싶었는지 시트와 스티어링 휠 등 곳곳에 SVR 마크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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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 휠에는 시프트 패들이 장착되며 도어 패널 수납함을 비롯해 센터 콘솔 등 곳곳을 카본으로 마감했다. 전형적으로 고성능 스포츠카들이 실내를 꾸밀 때 쓰는 방식이다.

통풍 및 열선 시트를 비롯해 앰비언트 라이트, USB 포트와 냉장고 등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구성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부 USB 포트는 센터 콘솔 안쪽에 깊이 숨어있어 사용하기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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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리프트를 통한 큰 변화의 축에는 계기판과 센터페시아가 속한다. 계기판에는 12.3인치, 센터페시아에는 10인치 디스플레이 2개를 달았다.

센터페시아 상단 모니터는 내비게이션을 비롯한 차량의 인포테인먼트 기능으로 쓰인다. 하단은 공조장치, 오디오, 시트 관련, 주행모드 변경을 위한 용도다. 대부분의 기능을 터치로 조작한다는 것도 좋지만 선명한 화질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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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스템 반응 속도가 느리다. 버튼을 누르거나 화면을 터치했을 때 약간의 시간이 느껴진다. 가끔은 버튼 조작에 반응하지 않을 때도 있다. 또 높은 화질 구현에 의한 발열 때문인지 내부에서 냉각 팬이 도는 소리가 들린다. 엔진 자체에서 만들어내는 소음이 크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지만 의외로 신경 쓰일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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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치 크기의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시원스럽게 정보를 표출한다. 큰 면적만큼 글씨도 크게 보여 답답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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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좌석은 버킷 시트 사용에 의해 시트백이 두껍다. 이는 뒷좌석 공간 축소로 이어진다. 물론 큰 차체를 가지고 있어 이것 자체에 불만은 없다. 헤드룸과 레그룸도 넉넉하다. 뒷좌석에도 통풍과 열선이 갖춰진다. 센터 터널 없는 평평한 바닥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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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공간은 780리터를 기본으로 1686리터까지 확장된다. 트렁크 쪽에 있는 버튼으로 뒷좌석을 접을 수도 있다. 또한 버튼 조작을 통해 후륜 지상고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어 화물 수납 때 편하다.

편의 및 안전장비로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전방 추돌 경고와 긴급제동, 사각 및 후측방 경고 기능이 탑재된다. 차선이탈 경고 및 방지 기능도 갖추고 있는데, 차선 중앙 유지 기능은 없다. 오토 하이빔은 픽셀 LED 램프와 연동되는데, 142개의 LED로 상대방에게 눈부심을 전달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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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비롯해 어라운드 뷰 모니터와 자동 주차 기능도 있다. 다만 평행 주차 기능만 지원하는 것 같다. 직각 주차장에서도 평행 주차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고급 모델인 만큼 사운드 시스템은 메리디안(Meridian) 제품이다. 스피커는 총 18개이며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지원한다. 사운드 설정은 스테레오(Stereo), 메리디안(Meridian), 돌비(Dolby), dts 등 4가지 중에서 선택한다. 스테레오가 라디오를 듣는 느낌이라면 메리디안은 고음 영역을 깔끔하게 부각하려는 느낌, 돌비 모드는 중저음을 강조해 현장감을 키우려는 모습이다. dts는 저음에 집중해 울림을 키울 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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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좋은 사운드 시스템이다. 하지만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에 탑승하는 순간 이 오디오의 존재감은 희석된다. 시동을 거는 것만으로 8기통 5리터 엔진이 만들어내는 풍부한 사운드가 실내공간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특히나 강렬한 배기 사운드는 운전자의 오른발에 힘을 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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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8기통 엔진임에도 브랜드마다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다. 그에 따라 음색도 전혀 다르게 튜닝된다. 페라리나 마세라티는 소위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특색 있는 사운드가 매력이다. AMG의 8기통은 괴물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색이 특징이라면 GM의 OHV 8기통은 조금은 툴툴거리지만 기계적인 사운드를 살리는데 의미를 둔다. 반면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의 8기통은 힘 그 자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 그것을 알리는데 목적을 둔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한 결과 51.5 dBA였다. 쉐보레 카마로 SS가 47.5 dBA, 포드 머스탱 GT가 48.0 dBA를 보였던 바 있다. 참고로 메르세데스-AMG GLE 63 S 쿠페가 의외로 조용한 39.0 dBA을 기록했었다. 확실히 시동만 걸어도 요란스럽다. 하지만 듣기 좋은 배기음이다. 부밍음도 없어 머리가 아프지도 않다. 가변 배기 시스템을 갖췄는데, 아이들 상태부터 배기음을 바꿔주는 방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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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인 것은 일상적인 주행 환경에서는 조용하다는 것. 시속 80km의 속도로 주행하는 경우라면 8기통 엔진의 소리가 미약하게 들릴 정도다. 정숙성을 확인해봐도 61.0 dBA 수준으로 일반 승용차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그야말로 우악스러운 배기음을 터뜨리며 달린다. 최대 가속 상황에서 실내에 울려 퍼지는 사운드를 확인한 결과 110.0 dBA. 외부에서 측정을 한 결과 107.5 dBA 수준이었다. 실제로 들으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뻥 뚫릴 정도다. 분명 속 시원한 멋진 사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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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V8 5.0리터에 슈퍼차저를 더해 575마력과 71.4kgf.m의 토크를 낸다. 참고로 메르세데스-AMG GLE 63 S 쿠페는 V8 5.5리터 트윈터보 엔진으로 585마력과 77.5kgf.m의 토크를 갖고 있다. 마세라티 르반떼 GTS가 V8 3.8리터 배기량으로 550마력과 74.7kgf.m를 만들어내니 비교가 될 것이다.

엔진은 재규어 랜드로버의 3세대 8기통 엔진을 쓴다. 여기에 6세대 슈퍼차저를 사용했다. 참고로 엔진 동력을 사용하는 슈퍼차저는 배출가스를 활용하는 터보와 달리 엔진의 빠른 반응을 끌어내는데 유리하다. 또 엔진의 힘이 고르게 발휘되기 때문에 출력이나 토크가 급작스럽게 쏟아지지 않는 장점도 있다. 자연흡기 엔진의 특성을 갖춘 과급 장치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고회전 영역을 사용하는데 제한적이며 슈퍼차저를 작동시키는데도 엔진의 힘을 나눠 써야 하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저회전 토크가 우수하고 엔진 회전 영역이 제한적인 OHV 엔진과 궁합이 좋은 편이다.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이 사용하는 슈퍼차저는 이튼(Eaton)사의 TVS(Twin Vortices Series)다. 가장 대중적인 방식인데, 6세대로 슈퍼차저로 넘어오면서 공기를 압축하는 날개가 3개에서 4개로 늘었다. 날개의 비틀림 형상도 60도에서 160도로 변경됐다. 덕분에 슈퍼차저 특유의 소음과 진동이 줄어들고 공기 압축 효율이 상승했다. 또 슈퍼차저 특성상 필요로 하는 엔진의 힘을 적게 쓴다는 것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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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엔진과 슈퍼차저 덕분에 엔진 출력이 575마력까지 높아졌다. 초창기 510마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550마력으로 출력이 높아졌고, 현재는 575마력까지 발휘하게 된 것. 참고로 재규어 XE SV 프로젝트 8(XE SV Project 8)은 같은 엔진으로 600마력까지 뽑아 쓴다.

2083737489_tRs8ldM5_49ad4148775bdbd73d12재규어 XE SV 프로젝트 8


변속기는 ZF의 8단 자동이다. BMW의 다양한 모델에 탑재되는 변속기로 알려졌는데, 랜드로버도 이 변속기를 튜닝해 변속 시간을 50%나 빠르게 만들었다. 또 기어를 내릴 때 엔진 회전수를 보상해주는 기능과 중력 가속도를 인식해 코너에 접근할 때 최적의 변속 시점을 만들어주는 기능도 지원한다. 덕분에 AMG GLE 63 S 쿠페의 7단 변속기보다 빠르고 정확한 성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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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엔진과 변속기 조합을 갖춘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이 만들어내는 가속 성능은 어땠을까? 아쉽게도 변속기는 런치 컨트롤을 지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스톨 상태에서 출발을 해야 했다. 엔진 회전수는 2000rpm 부근에 고정되는데, AMG GLE 63 S 쿠페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참고로 르반떼 GTS는 3000rpm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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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력 측정 결과는 4.68초. 제조사가 4.5초라고 밝혔으니 큰 차이를 보이는 수준은 아니다. AMG GLE 63 S 쿠페는 4.46초, 르반떼 GTS가 4.53초로 조금 더 빠르긴 했다. 분명한 것은 모두 놀랄만한 수준의 성능을 갖췄다는 사실.

구동력 배분은 전후 50:50 비율이 기본이다. 다판 클러치를 사용하는 센터 디퍼렌셜 덕분에 구동력을 전륜이나 후륜에 100%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후륜에는 액티브 LSD와 토크 벡터링 기능도 넣었다. 4륜 구동 시스템을 갖춘 보편적인 SUV들은 코너링 때 언더스티어 특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이하 SVR)도 언더스티어를 바탕으로 하지만 가속 페달 조작에 따라 리어축이 움찔거리는 경험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낸다. 특히나 자연흡기 엔진처럼 강한 힘이 휠에 걸리는 만큼 섬세한 조작을 해야 한다. 다른 SUV들처럼 코너 탈출 때 가속 페달을 "확" 밟아버리면 꽤나 부담스러운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 물론 자세제어장치가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해 주지만 섬세한 조작을 통해 SVR의 힘을 제대로 통제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일반적인 안티 롤 바 대신 유압으로 제어되는 액티브 안티 롤바인 액티브 롤 컨트롤을 추가한 것도 특징이다. 부싱도 레인지로버 스포츠 슈퍼차저 모델에 비해 20%가량 강도를 높여 차체가 기우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 이는 상황에 따른 차체의 기울어짐(바디롤)을 제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이 기능에 대해 매우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레인지로버 시리즈가 그러하듯 오프로드라는 요소를 담아낸 덕에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오는 득도 있다. 승차감이 꽤나 좋다는 사실. 고성능 SUV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성능에 대응하기 위한 단단한 서스펜션을 쓰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승차감에서는 일부 손해를 본다. 반면 SVR은 승차감을 중심에 두고 성능을 구현하려는 모습이다. 서스펜션의 구조적 특징도 이유가 되겠지만 결론적으로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갖었다는 사실. 때문에 바디롤은 일정 수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주행에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코너링 때 부담이 되는 것은 바디롤 보다 타이어의 성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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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R에는 275mm 급 피렐리 스콜피온 시리즈의 4계절(Scorpion Verde All Season) 타이어가 쓰인다. 다소 의외의 선택이었다. SVR은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1천 바퀴나 달리면서 주행 완성도를 높였고, 이를 바탕으로 기록도 작성했다. 또한 랜드로버가 밝힌 최대 중력가속도는 1.3G에 달한다. 기존 1.1G에서 0.2G 가량을 향상시킨 것. 이런 성능을 내려면 타이어가 버텨줘야 하는데, 275mm 급 4계절 타이어로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참고로 옵션으로 달리는 22인치 휠을 쓰면 타이어 너비도 295mm로 늘어난다.

코너링 한계가 높은 것은 아니다. 물론 일반적인 SUV들의 것과 비교될 수준은 아니지만 더 넓은 고성능 타이어를 쓰는 경쟁차들에 비한다면 코너링 한계 자체는 다소 낮은 편이다. 하지만 스티어링 휠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SVR이 다른 면모를 갖춘 SUV라는 점을 알게 된다. 특히나 2.3톤을 넘어서는 차체를 가진 차의 움직임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순발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큰 사이즈의 스티어링 휠을 통한 차량의 움직임 제어가 민첩하다는 점이 꽤나 인상적이다. 쉽게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좋은 수준의 핸들링 성능을 갖췄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는 제동 성능을 보자. 최대한의 가속력 전개, 도로 폭이 좁아 보일 무렵, 브레이크 페달에 압력을 가한다. 페달 조작에 다소 힘이 들지만 이는 세밀한 조작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강한 제동이 최대한 전개될 때 타이어가 차체 무게를 힘들어하는 현상이 목격된다. SVR에는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이 쓰인다. 하지만 2.3톤을 넘어서는 차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타이어의 능력도 적극 끌어 써야만 한다. 앞서 언급된 4계절 타이어, 아무래도 조금은 역부족이다. 제동 시험에서도 이 현상이 나왔는데, SVR은 시속 100km에서 정지하는데 38.9m 수준의 제동거리를 요구했다. 일반 SUV라면 매우 좋은 성능이지만 500마력대 성능을 뽐내는 SUV치고는 다소 부족한 편이다. 여기에 지속된 테스트가 이뤄지면서 40m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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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기대에 못 미친 제동거리가 나온 이유는 2가지다. 첫 번째로 타이어 성능이 부족했고, 두 번째로 브레이크의 길들이기가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았다. 이와 같은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 길들이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가끔 2000km 미만의 주행거리를 가진 신차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대부분 브레이크 길들이기가 이뤄져 있지 않았다. 우리 팀은 다양한 측정을 해야 하기에 시간이 되는 범위 안에서 길들이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고성능 차량이라면 그 시간이 수배 가량 더 길어진다. 길들이기에는 높은 속도와 꽤나 먼 거리가 필요하다. 시간? 당연히 오래 걸린다.

사실 브레이크 컨디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기자나 전문가(?)들도 잘 모른다. 카레이서 그들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차를 빨리 타는 능력을 가진 것이지 이런 부분에 대한 노하우가 많지 않다. 우리 팀은 다양한 전문 드라이버들을 만났는데, 아쉽게도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각 계통의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하는 드라이버가 딱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지금 모 수입사의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 중이다.

물론 이런 것들의 성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들도 있다.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브레이크 개발 연구원, 타이어 개발 연구원들이 브레이크 시스템의 컨디션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우리가 탄 SVR의 누적 주행거리는 4천 km를 넘어서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직선에서 가속력을 즐기는데 이용된 것 같다. 타이어만 봐도 측면에 걸린 힘의 흔적이 적었다.

서론이 길었다. 길들이기가 제대로 된다면 그래도 1m 내외의 거리는 당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고성능 타이어가 갖춰지면 후반에 밀려 나는 일이 없을 테니 제동 거리를 당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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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가 한계를 보였지만 그렇다 해도 SVR은 잘 달렸다. 다만 이 차의 특성상 연비는 그리 좋지 못했다. 시내 주행에서 보인 연비는 거의 4~5km/L 내외 수준. 고속도로 정속 주행을 해야 10km/L를 간신히 넘어섰다. 측정된 연비는 약 10.4km/L 정도. 참고로 국산 제네시스 DH(G80) 3.3 4륜 구동 모델이 11km/L 수준을 보였고, 유사 수준을 보인 차로 메르세데스-AMG의 A45가 있으니 덩치에 비하면 크게 떨어지는 편은 아닐 수도 있다.

참고로 연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하나 더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오른발. 아마도 SVR이 들려주는 황홀한 배기 사운드를 듣기 위해 자꾸만 가속페달에 힘을 가할 것이다. 우리 팀도 그랬고, 아마도 당신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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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 SUV를 이용하는 이유? 여기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 우선 장거리 주행을 해보면 고성능 SUV들의 진가가 발휘된다. 어떤 속도이건 매우 편하다. 고속도로에서의 추월? 그런 건 일도 아니다. 그뿐인가? 적당히 듣기 좋은 엔진음과 배기 음색이 사운드 시스템을 대체해 버린다. 그렇다고 무작정 시끄러울까? 정속 주행 때는 꽤나 조용하다. 조용히 나만의 환경을 즐기다, 까불거리는 튜닝 양카들에게 힘의 본질을 보여줄 수도 있다. 또한 고급차로의 대접도 기본이다.

우리 팀에서 영상을 담당하는 PD는 처음 이런 차들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크고 넉넉한 차체를 가진 고성능 SUV들이 보여주는 편안함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부족한 요소들이 이리저리 많다고. 맞는 말이다. 분명 부족한 것들이 쉽사리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부자들의 지갑을 털 수 있는 이유는 그 부족함을 모두 덮어버릴 강력한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고가의 고급차를 욕하는 소비자들이 의외로 많다. 여기에 국산차의 가성비를 논한다. 값비싼 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일까? 그저 소비자 간 환경에 의해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이다. 당신 통장에 수십억 원의 잔고가 생겼다. 지금 당장 어떤 자동차 매장에 가고 싶은가? 고성능 모델이란 그런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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