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기블리


마세라티는 기블리로 진입 장벽을 낮췄다. 이후 르반떼를 통해 본격적인 볼륨 경쟁에 접어들었다. 기함급 모델로 콰트로포르테가 있으며, 그란투리스모로 스포티한 매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과거 우리 팀이 테스트했던 마세라티 모델은 기블리 S Q4와 르반떼 디젤, 그리고 르반떼 S. 모두 4륜 구동 시스템인 Q4가 장착됐었다. 국내 소비자들은 후륜구동 구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때문에 4륜 모델의 인기가 상당하다. 하지만 4륜 구동 시스템이 마세라티가 보여주려는 드라이빙 감각을 모두 살려내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세라티 기블리의 중심 모델, 기블리를 테스트하기로 했다. 기블리 S Q4에서 엔진 성능을 디튠시켰지만 후륜구동이 기본이다.

내 외관은 앞서 만났던 기블리 S Q4와 동일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4륜 시스템만 빠졌다. 차이점이라면 후면부를 장식하던 레드 컬러의 ‘S’ 배지와 ‘Q4’배지가 사라졌다는 것. 하지만 시각적인 존재감 만큼은 여전하다. 마세라티 특유의 돌출된 그릴, 4.9m가 넘는 거대한 차체, 그 속에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곡선들이 어우러졌다. 20인치 크기의 휠과 거대한 브레이크 디스크도 일반적인 세단에서 찾기 힘든 모습들이다.

엔진룸을 살펴보자. S Q4와 다른 점이 눈에 띈다. S Q4는 마세라티 로고가 부착된 엔진 커버에 블루 컬러를 넣어 멋을 냈다. 반면 하위 모델은 회색 톤으로 마무리된다.

기블리의 입문 트림이라지만 고급 가죽을 폭넓게 사용한 실내가 기본이다. 아니, 이 부분만큼은 상위 모델과 차이가 없다. 도어 안쪽까지 가죽으로 마감했고, 각종 금속 장식도 표면만 도금한 것이 아닌 실제 금속을 다듬어 넣었다. 쓸데없는 구성 같지만 이러한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 럭셔리 브랜드 명성을 이어가게 해준다.

대형 패들 시프트와 왼쪽에 위치한 시동 버튼도 마세라티의 특징이다. 하지만 큰 패들 뒤에 숨은 방향지시등 레버의 조작성이 아쉽다. 대체 이탈리아 사람들은 얼마나 손이 얼마나 큰지…

나름대로 한글화에도 힘썼지만 ‘스포츠 현탄액 모드’처럼 그냥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부분들이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아울러 후방카메라 화질도 개선되면 좋겠다. 물론 최근에는 후방 카메라를 성능 좋은 것으로 바꾸는 등의 튜닝도 시행되지만 제조사 차원에서 고급형 카메라를 달아 완성도를 높여주면 좋겠다.

이 밖에 아쉬움이라면 제한적인 뒷좌석 공간이 꼽힌다. 체감적으로 국산 준중형 세단과 비교될 수준이다. 전륜구동 모델과 달리 센터터널이 높게 위치하는 탓에 시각적으로 더 좁아 보인다. 하지만 기블리의 휠베이스는 3m. 참고로 제네시스 G80도 3m의 휠베이스를 갖는다. 둘의 뒷좌석 공간 차이는 꽤나 많이 난다.

반면 트렁크 공간은 크다. 어디 모난 곳 없이 반듯하다. 또, 넓고 깊다. 또한 뒷좌석 폴딩 기능도 지원한다.

기본형이긴 하지만 국내 사양에는 스포츠 모드와 댐핑컨트롤 기능도 갖춰진다. I.C.E.(Increased Control and Efficiency) 모드도 제공된다. 이름 때문에 겨울 노면용 기능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쉽게 에코 모드로 생각하면 쉽다. 이 모드로 주행할 때는 가속페달을 밟아도 적극적인 가속을 해나가지 않는다. 심지어 기어를 내려 RPM을 올리려 하지도 않는다. 차량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나름대로 연료 소모를 낮추는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우리 팀이 앞서 테스트를 진행했던 기블리 S Q4와 달리 이번 기블리는 구성이 좋아졌다. 우리 팀이 지적했던 애매한 CD 삽입구를 제거하고 USB 단자를 넣었다. 각종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도 추가됐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이탈 경고 기능은 물론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시스템도 갖춰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블리의 엔진은 V6 3.0리터 트윈터보 엔진의 디튠 사양이다. S Q4와 달리 4륜 구동이 빠지고 후륜구동이 기본이 된다. 출력은 350마력, 최대토크는 51kg.m를 갖는다.

실측 결과 차체 무게는 2,011.5k 수준. 기블리 S Q4가 2.068.5kg였으니 약 60kg 정도 가볍다.

성인 여성 1명 정도가 빠진 무게. 출력은 감소했지만 경량화(?)가 이뤄진 기블리의 가속성능은 어떨까?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5.95초. 인피니티 Q50S(5.72초)나 메르세데스-벤츠 CLS400(5.67초)와 비교되는 가속력이다. 410마력의 기블리 S Q4가 5.3초를 기록했으니 수긍할 수 있는 성능이다. 참고로 마세라티가 발표한 공식 가속성능은 5.7초.

가속페달을 밟으면 스포티한 배기음과 함께 속도를 높여나간다. 오랜만에 듣는 사운드지만 역시 마세라티의 배기음은 정말이지 멋지다. 그리고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한다. 체감적으로 느끼는 가속력과 달리 속도계가 빠르게 상승한다는 것. 가속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시속 180km 정도까지는 정말이지 쉽게 오르내린다. 체감적으로 둔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 속도에 신경 쓰지 않고 운전하다 과속 카메라에 단속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터보차저를 사용하는 엔진이지만 감각에서는 자연흡기 엔진을 연상시킨다. 가속 페달을 과감하게 밟아도 순간적으로 향상되는 토크감보다 적당히 묵직하게 밀어주는 느낌으로 가속돼 좋다. 의외로 다루기 쉬운 엔진이다. 하지만 힘을 끌어낼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뒷바퀴를 쉽게 미끄러뜨릴 정도의 능력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급조작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몸으로 느껴지는 속도감은 낮지만 그렇다고 고속 안정감이 매우 뛰어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유는 스티어링 시스템에 있다. 기블리가 사용하는 스티어링 시스템은 유압식. 노면의 반응을 스티어링 휠에 대부분 전달해준다.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에 익숙해진 지금의 소비자들은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이 평소보다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을 조금 불안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 팀, 아니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이 전달하는 감각에 익숙해졌다는 뜻이 된다.

한가지 더 이해해야 할 부분은 배기 사운드다. 아이들링 때의 소음은 일반 모드 기준 47.5dBA 정도. 여기서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57dBA까지 높아진다. 대형급 세단들이 80km/h 정도의 속도로 도로를 달릴 때와 비슷한 소음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음이 아니라 사운드로 봐야 한다. 마세라티가 항상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자사 홈페이지에 배기 사운드를 등록하는 브랜드도 흔치 않다. 물론 사람 많은 도심지역이나 골목길에서는 스포츠 모드를 끄는 에티켓을 꼭 지키자.

기블리의 멋진 배기음은 와인딩 로드에서 더 빛난다. 멋진 사운드는 달리는 즐거움을 더욱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기블리는 코너에서 대형 세단 답지 않은 움직임을 보인다. 빠른 가속이 전개되는 환경에서 변속기 반응도 좋다. 기블리에 탑재된 ZF 8단 자동변속기는 일반 모드에서 부드러움에 초점을 맞추지만 스포츠 모드로 바꿔주면 기대 이상으로 빠른 변속을 해낸다.

운동 특성은 언더스티어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코너 탈출시 가속페달 조작에 따라 오버스티어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러한 성격을 잘 활용하면 파워 슬라이드는 물론 드리프트까지 가능하다. 휠베이스가 길어 차량의 움직임이 급작스럽게 바뀌지 않고 후륜에 LSD까지 갖춰져 있어 휠의 슬립도 이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서스펜션의 처리 능력도 수준급이다. 차량의 무게를 충분히 받아내면서 코너에서 차체를 안정화 시키는 능력도 뛰어났다. 2톤의 무게는 코너링 속도를 높이는데 한계점으로 작용하지만 대형급 세단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움직임까지 보여준다. 가변 댐핑 시스템인 스카이훅은 주행모드에 따라 댐퍼의 반응을 큰 폭으로 바꿔준다. 하지만 스포츠 모드는 일반 도로에서 사용하기에 조금 과한 성격이다. 노면 굴곡에 따라 튀는 모습도 연출되기 때문에 서킷과 같은 환경이 아니라면 일반 모드로 달리는 것을 추천한다.

마세라티의 제동 시스템은 이번에도 역시 훌륭한 성능을 발휘했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7.27m. 테스트가 수차례 반복돼도 이 최단거리에서 1m 이상 밀려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제동 내구성은 서킷과 같은 가혹한 테스트 조건에서 더욱 부각됐다. 20분 내내 가속과 제동을 반복하며 최고 기록을 위해 달렸지만 브레이크만는 끄떡없이 성능을 유지해냈다.

마세라티 모델들이 그러하듯 브레이크 답력은 조금 무거운 편이다. 브레이크뿐 아니라 가속페달과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답력도 일반 차량보다는 대비 무겁다. 때문에 여성 소비자들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한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우리 팀이 기블리의 서킷 테스트를 진행할 때 예상했던 랩타임은 2분 4~5초 가량이었다. 차량의 톤당 출력비를 계산해 대략적인 성능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기블리가 작성한 기록은 1분 58초, 11. 2톤의 무게를 무게를 생각했을 때 상당한 성능을 발휘한 것이다. 모든 자동차는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고속도로 등에서만 시승을 해본다면 그저그런 자동차로 폄하할 수 있지만 가속, 제동, 회전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났을 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급의 차가 그러하듯 연비는 그리 좋진 못하다. 기블리는 시속 100~110km로 주행하는 환경에서 약 10.5km/L의 연비를 기록했다. 80km/h의 속도로 정속 주행하는 상황에서도 연비는 똑같이 10.5km/L를 보였다. 80km/h에서는 8단을 사용하지 못하고 7단에서 애매한 엔진 회전수를 사용했기 때문에 연비 절감 효과는 없었다. 평속 15km/h의 도심 정체구간에서 기블리는 약 5km/L의 연비를 보였다. 2톤의 무게로 가다서다하는 것을 생각하면 수긍할 수 있는 연비다. 대략적으로 제네시스 G80 3.8과 유사한 수준으로 보면 된다.

기블리가 마세라티의 입문형 모델이라고 해도 마세라티는 마세라티다. 특히 후륜구동 차량만이 전달할 수 있는 솔직하고 즐거운 주행감각이 마세라티의 손을 거쳐 한층 더 스포티해졌다.

아직 국내소비자들은 후륜구동 차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오버스티어에 대한 불안감보다 눈 오는 날 언덕길을 못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욱 크다. 그래서 벤츠도, BMW도, 최근에는 재규어까지 4륜 구동 모델의 판매 비중이 높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요즘에는 강원지방이 눈길을 보기 더 힘들다. 제설작업이 잘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역을 막론하고 깊은 산골이 아니라면 눈이 오는 순간부터 제설차들이 출동한다. 또 겨울에는 겨울용 타이어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을 위해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더 이상 후륜구동 차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특히 마세라티라면 4륜도 좋지만 후륜구동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제한된 소비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기블리의 소비층은 다르다. 아우디 A6, BMW 5시리즈, 벤츠 E 클래스와 같은 선상에서 바라본다면 실망할 일이 뻔하다. 그들 대비 부족한 편의 장비들이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뒷좌석도 좁다. 하지만 사운드를 시작으로 달리기에서 보이는 특화된 성능은 브랜드 가치를 떠나 운전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그 가치에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는지 여부가 마세라티를 구입하는 소비자를 결정짓는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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