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박 시승기] 제네시스 EQ900...뒷좌석에만 타봐도 알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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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느긋하게 뒷좌석에 앉아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까. 실내외는 부분적으로 위장막까지 덮여 있었다. 또한 실내 사진 촬영은 금지라고 했다. 이런 시승이란걸 알고 이곳까지 날아 왔지만 막상 타라고 하니 망연자실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것, 차라리 선입견을 갖지 않고 순수하게 그저 느낌만 살펴보기로 했다. 이건 그러니까 엉덩이로만 느껴 본 시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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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좀 세게 달려주세요" / "알겠습니다"

한국인 전문 드라이버는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차를 출발 시켰다. 5.0리터 V8 엔진을 장착한 EQ900은 꽤 우렁찬 소리를 내며 발진했다. 럭셔리 세단이라고 했는데, 이런 엔진음은 의외였다. 온전히 소리를 없애지 않고 듣기 좋은 사운드를 살려놓는 유럽차들의 느낌이다. 코너링에서도 꽤 짜릿한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 차는 에쿠스의 후속 모델이다. 시작은 분명 그랬건만 이 사람들이 그만 실수로 훌륭한 스포츠 세단을 만들어 버린 것만 같다. 매우 재기발랄하게 움직여줘서 느낌만으로는 에쿠스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안팎으로 젊어진 감성이 내 마음에는 쏙 드는데, 회장님들 마음에도 들지는 모르겠다.

현대차는 1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있는 현대차 캘리포니아프루빙그라운드(Hyundai California Proving Ground) 시험주행장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제네시스 EQ900을 선보였다.

시승을 위해 주행한 차량은 총 3대로 3.3리터 터보 AWD, 3.3리터 터보, 5.0리터 등 3가지 모델이 등장했다. 다만 아직 연구소에서 제작한 시험 생산차량으로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다.

기자들에겐 제네시스 EQ900의 위장막을 씌운 상태에서 시승 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날 시승은 말하자면 '간접시승'으로 기자들 40여명은 차의 조수석과 뒷자리에 앉았다.

이 차는 스포츠세단인가

이곳은 현대차 모하비 주행시험센터. 곁에 있는 모하비 항공 우주공항보다 클 뿐 아니라 심지어 우주정거장에서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크기의 거대 구조물이다.

주행시험센터의 가운데는 고속 주회로가 있는데, 이 주회로가 커져야만 직선 주행 거리가 늘어나고, 실제 주행에 가깝게 된다는게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땅에도 고속주회로가 없는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좁은 면적에서 최고속도를 내야 하기 때문에 40% 이상 가파른 경사각을 만들어야만 속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실 주행상황에선 그렇게 기울어진 도로가 없기 때문에 재연성이 떨어진다. 이런 거대시험장이 제조사에 중요한 이유다.

“험하게 한번 타봐유” 앞좌석에 탄 선배가 충청도 사투리를 쓰며 은근히 드라이버를 부추겼다. 과묵했던 드라이버는 “모두 안전벨트는 매셨죠?” 한마디 하더니 S로 굽어진 2차선 와인딩 도로에서 65-70마일로 차를 몰아붙였다. 시속 110km 정도의 빠른 속도다.

속도도 속도지만 약간의 스릴과 짜릿함이 느껴지는건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뒷바퀴가 비명을 질러대고, 약간씩 오버스티어를 넘나드는데도 운전자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끝까지 가속을 더해갔다. 차는 옆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매우 안정적인 거동을 보였다. 이게 정말 현대차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안정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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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클래스와 비교해달라는 요구에 테스트 드라이버는 "S클래스와 이 차는 색깔이 다른데, 저는 이 차를 타면서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춰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밸런스란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되지만 이 경우는 지나치게 스포츠나 컴포트에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말로 들렸다.

또 "이전 플랫폼에서는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이 드디어 이뤄졌다"면서 "이전엔 승차감에서 컴포트함을 확보하려면 뭔가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DH 이후로는 꽉 조여진 느낌이 들었고 고속 주행 안정성에 있어서도 월등히 우수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선도로를 들어섰다. 순식간에 속도계 '바늘'이 시속 240km까지 쭉 치고 올랐다. 사실 바늘은 이전 에쿠스와 달리 디지털 대신 진짜 바늘을 이용한게 오히려 보기 좋았다.

보닛 위의 두툼한 위장막이 꽤 큰 공기 저항을 만들어 낼텐데도 여전히 안정감이 우수했다. 이 속도에서 차선 변경을 해보였다. 운전자는 "고속으로 가면 차량의 응답이나 선형성 같은게 떨어지고 피드백이 떨어지면 본능적으로 불안해지기 마련"이라면서 "안정감이 우수하고 피드백이 확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감 있게 가속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렁이던 이전 에쿠스와 달리 뒷좌석에서도 유럽차처럼 꽤 든든한 안락함이 느껴졌는데, 차가 우수해서 그런건지 운전자가 우수해선지 명확히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건 고속에서도 불안감이 적은건 인상적이고 이전 에쿠스에 비해 서스펜션이 단단하게 변화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타는 신형 제네시스(DH)에 비해서도 훨씬 세련된 거동이다.

그런데 이전 모델에도 있던 에어서스펜션이 삭제된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에어서스펜션은 장착하면 즉시 승차감을 높일 수 있는 장비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에어서스펜션이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는 3-4년에 한번씩 완전 교체를 해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기능을 장착하는건 오히려 고급감을 해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흠, 그럴싸한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지만 우리 회사 대표님이 타는 S클래스는 왜 생전 교체한번 안하고도 멀쩡한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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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런 실내, 최고급의 VIP 차량인가

지난달 연구소 내에서 비공개를 전제로 살펴본 여러대의 제네시스 EQ900 중 가장 마음에 드는건 3.3 터보였다. 4인승에 VIP 패키지가 장착된 모델이었는데, 후석이 좌우로 갈라진 점이나 양쪽에 장착된 디스플레이도 세련돼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날 시승한 3.3터보는 어쩐 일인지 기본 모델만 와서 좀 실망했다. 특히 뒷좌석 스키스루 부분은 고급차에 붙어있어선 안될 싸구려 부품 같아 보였고 통풍시트는 등받이쪽 작동이 안됐지만, 사전 생산모델(P2)인데다 테스트 차량이어서 상태가 썩 좋지 못했던 것 같다. 상태가 유독 나빴던데다 앞서 4인승도 앉아보고, 5인승 5.0리터에도 타보니 이 차는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였다.

다만 각종 소재감이나 비례감으로 볼 때 최고급의 실내인건 분명했다. 선루프는 파노라마선루프가 적용되지 않았는데, 고급 법인차는 선루프를 선택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한 것 같았다. 국내 다수 대기업들은 선루프를 '사치옵션'으로 분류해 선택할 수 없게 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경량화는 최근 자동차 업계의 최고 화두인데도 플래그십 모델에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나 알루미늄합금을 쓰지 않는 점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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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S클래스 탄다”의 힘

이날 제네시스 EQ900의 비교차종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렉서스 LS460이었다. 하지만 S클래스의 힘은 주행성능에서 나오는것 같지 않았다. 타고 있는 드라이버까지 좀 더 경력있는 운전자 같아 보이는 착시도 생겼다. 물론 지극히 속물적인 눈으로 볼때 얘기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좋게 보여야 하는게 고급차의 미덕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그만큼 강력한 힘을 뿜어냈다.

제네시스 EQ900은 어쩌면 일부분에선 S클래스보다 더 멋지고, 더 나은 기능도 갖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S클래스가 특징적인 헤드램프와 그릴을 갖추고 실내외의 클래식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일관성 있게 갖고 있는데 반해, 제네시스 EQ900은 그리 독창적인 개성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의 제네시스는 깔끔하고 매력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다음의 제네시스에 물려줄만한 디자인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는 모르지만 지금이 어쩌면 장구한 제네시스 역사를 시작하는 첫번째 단락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새 자동차 EQ900의 디자인과 성능 상품성은 어느 정도 합격점. 이제 이 브랜드를 어떤 방법으로 키워 나갈 것인지, 현대차의 숙제가 더욱 무겁게 남았다.

김한용 hy.kim@motorgraph.com
제공
모터그래프 (www.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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